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지와라 잇키 (문단 편집) == 상세 == 작품을 보면 주로 거의 자기학대 수준의 과격한 자기 수양을 미화하고, 주인공들의 정신상태가 매우 반항적이고 자기파멸적이라는 것이 특징이다. 전자의 경향은 소위(所謂) "근성스포츠물"의 원조가 되었고, 후자의 경향은 《[[내일의 죠]]》와 같은 작품을 통해 당시 일본 운동권 학생들의 정신적 지주로 추앙받기도 했다. 실존인물들을 만화의 캐릭터로 자주 등장시킨 것도 특징이다. [[역도산]] [[최영의]], [[왕정치]], [[안토니오 이노키]], [[김일(프로레슬러)|김일]] 등이 그 예이고, 실제로도 역도산, 최영의, 이노키와 연이 있었다. 다만 만화적 재미를 위해 현실과 동떨어진 과장된 묘사를 굉장히 많이 사용했기 때문에, 실상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는 것은 감안해서 봐야 한다. [[소년원]] 출신이었다고 하며, 때문에 작중에 소년원 출신의 주인공이 자주 등장한다. 대표적으로 《타이거 마스크》, 《내일의 죠》. 수없이 많은 히트작을 냈고, 잇키의 작품들은 애니메이션, 드라마, 영화로도 속속제작되었기 때문에 만화계와 스포츠계에 있어서 엄청난 영향력을 지닌 거물이었지만 작가 생활이 상당히 방종했다. 결국 1983년에 [[소년 매거진]] 부편집장 상해사건으로 경찰에 체포되었고, 그 과정에서 야쿠자들과 벌인 [[안토니오 이노키]] 감금사건[* 그 안토니오 이노키가 맞다. 이 사람은 프로레슬링과 인연이 엄청나서, 프로레슬링 단체를 설립하기까지 했던 사람이다.], 호스티스 폭행 미수사건, 압둘라 더 부처의 책으로 발표된 《프로레슬링을 10배 재미있게 보는 방법》의 실질적 대필작가인 후부 칸(ゴジン・カーン)[* 책에는 번역자로 기록되어 있었다.]에게서 10만엔을 강탈한 사건 등이 줄줄이 터져나갔고, 이후로 만화계에서 퇴출되다시피 했다[* 연재 중이던 작품은 중단되었고, 단행본은 절판.]. 우여곡절 끝에 복귀하기는 했지만, 췌장염으로 건강이 안 좋았고, 평판은 이미 바닥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초라한 말년을 보냈다. 만화 원작자로 유명해졌지만, 원래는 [[소설가]] 지망으로 만화 원작을 쓰는 걸 탐탁치 않게 여겼으며, 소년 매거진의 마키노 타케로가 일 얘기를 가지고 갔을 당시에도, 잡지나 신문 지상에 통속물을 쓰면서 연명하는 처지였음에도 내심 분개했다고 한다. 그 곪은 앙금이 터진 게 편집자 폭행 사건. 그런 카지와라가 이래저래 마음에 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만화 원작을 쓰게 된 이유는, 결국 집을 살 때 쓴 은행의 대출금을 갚기 위해서 였다고. 말년에 원작을 맡은 작품이 바로 전설의(?) [[인간흉기(만화)|인간흉기]]. 다만 항목을 보면 알수있듯이 중반부 이후로 스토리가 산으로 갔기 때문에 인기는 없었고 일본에서 유명한 만화는 아니다. 근성 스포츠물을 자주 연재했고, 인기도 엄청났기에 일본에서는 이 사람의 만화를 읽고 몰입하여 실제 스포츠 계에 투신한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이 때문에 당시 잇키의 작품을 감명깊게 본 일부 체육교사들 중에는 잘못된 정보를 함부로 받아들여서, 근성론만을 내세우며 무모한 오버 트레이닝을 강요하거나 잘못된 훈련법을 고수하여, 청소년들의 신체발달에 악영향을 주는 경우도 나왔다고 한다. 참고로 한국에서도 공식적으론 수입금지였지만 실제로는 하청애니메이션은 합작작품으로 간주해서 수입한다든지 아니면 해적판 만화책으로 암암리에 들어왔고 개중에는 인기를 끈 작품들도 상당수 있었기 때문에[* 일본만화의 수입이 공식적으로 금지되었다고 했지만 사실 합동출판사에서 일본만화의 표절을 작가진에게 강요한다거나 주요 소년잡지에서 일본만화를 해적판으로 수입해서 실어놓거나 했다. 당시 단행본을 내놓았던 업체라도 예외는 아니기 때문에 [[클로버 문고]]에서도 표절작을 일부나마 찾을 수 있기도 한다. 거기에다가 TV에서 방영하는 만화영화는 극장판 만화영화를 제외하면 죄다 미국이나 일본에서 수입해온 것이었으니 영향을 안받을래야 안받을수가 없었다.] 한국 스포츠계에도 일부 안좋은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하여간 '[[힘]]'이란 주제에 심취한 사람으로, [[막장]]으로 치닫은 자신의 말년을 정리하고, 개심하여 자신이 왜 그렇게 [[폭력]]에 매료되었는지를 알리기 위해, 자전적 만화 《사나이의 성좌》를 그리다가, 완결내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각종 스캔들[* [[이소룡]]의 정부였던 정패와도 스캔들이 있었다. 진상은 알 수 없지만...]과 말년에 보인 막장스러운 모습 때문에 사후 몇 년간은 카지와라 잇키의 존재를 논하는 것 자체가 터부시 되기도 하였으나, 일본만화계의 한 시대를 풍미하며 후세만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거물임에는 틀림없기에, 1990년대 중반부터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애당초 이사람의 존재를 빠트리고서는 일본의 70년대 만화계를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한 수준이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사실 만화계 뿐 아니라 [[극진공수도]]라든가 일본 [[프로레슬링]](특히 안토니오 이노키) 쪽에서도 엄청나게 영향력이 있던 사람이라서, 그쪽의 역사를 조금만 파보면 온갖 곳(주로 안좋은 쪽으로)에서 카지와라의 이름이 튀어나온다. 하지만 만화계와는 달리 극진이나 프로레슬링쪽에서는 아직까지도 카지와라의 이름은 터부시되고 있고, 진상을 아는 사람들도 저마다 입을 다물거나 자기에게 유리한 이야기만 하는 실정. 특히 프로레슬링계의 거물 이노키와도 엄청나게 많은 일이 있었기 때문에, 이노키가 죽은지 얼마 안 된 지금은 재평가가 힘들 듯.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